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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로 펜팔 하기의 어려움 - 펜팔 앱 슬로울리 Slowly
    리뷰 2021. 4. 7.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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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로 펜팔 하기의 어려움 - 펜팔 앱 슬로울리 Slowly

     

     

     

      1.

      나는 펜팔을 한다. 펜팔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외국어 배우기와 친구 만들기, 이 두 가지. 이외에도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고 싶다거나 다른 여러 가지가 더 있을 수도 있지만, 내 경우엔 저 두 가지 이유로 펜팔을 한다.

     

      가족과 친구가 있어도, 때로는 외로울 때가 있고,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요즘 많이 서비스되고 있는 친구 만들기 어플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것마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이럴 때 펜팔 친구는 좋은 위로가 된다. 시차가 나고, 멀리 떨어져 있고, 만나기 어렵다는 게 부담 없이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그리고, 외국어. 특히 영어. 학교 다닐 때 영어 시간에 졸지 않았고, 대학에 가서도 교양 영어를 몇 학기나 수강했고, 토익을 공부했으며, 심지어 듀오링고 같은 앱으로 또 또 또다시 처음부터 공부하고 있기도 한 영어. 하지만, 실생활에 사용하지 않으면 도무지 실력이 늘지 않고, 아차 하면 까먹기까지 하는 놈이 외국어란 놈이다. 한국 살면서 외국어를 쓰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여러 조건을 생각했을 때, 펜팔만 한 게 없다.

     

      2.

      부모님 시절의 펜팔이라면 참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이 많았겠지만, 인터넷이 보급되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요즘 이팔 e-pal은 정말 ‘나만 마음먹으면’ 해외의 친구를 사귈 수 있게 해준다.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그 속에 있다 보니 잘 느끼지 못하지만. 새삼, 세상이 좋아졌다.

     

      그래도 영어로 펜팔 하는 것은 어렵다. 고등학교 때 영어 시간에 소개받았던 펜팔 사이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마이스페이스, 인터팔스(인터팔) intepals 같은 여러 서비스를 전전해왔다. 터키, 브라질, 영국, 인도, 일본, 태국, 미국, 인도네시아, 모로코, 싱가폴, 스페인, 홍콩, 러시아의 여러 친구와 짧고 긴 펜팔을 했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서비스와 친구들은 바뀌었을지라도) 펜팔을 이어오고 있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펜팔이 어렵다. 

     

      3.

      펜팔을 하려고 시도한다면, 세계적인 공용어이며 우리가 그나마 제일 잘하는 외국어인 영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영어로 대화를 나눌 펜팔 친구로는 미국이나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같은 영어권 국가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자연히 펜팔 친구로 제일 먼저 검색해보게 되는 이들이 저 나라 사람들일 텐데, 이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전 세계 누구나 펜팔 친구로 저 나라 사람들을 떠올린다는 게 어려움의 시작이다. 펜팔 세계에서, 그들은 시작부터 인기 스타다.

     

      그들의 친구 신청란에는 이미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신청으로 가득할 것이고, 영어도 잘 안되고 인사말 몇 줄로 관심을 끌어올 기술도 없는 우리의 친구 신청은 무시되기에 십상이다. 어지간히 한국에 관심이 있어야만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더 생길 텐데. 많은 정보와 문화 콘텐츠가 영어로 생산되어 부족함을 못 느껴서인지, 그 양반들은 다른 나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어느 큰 나라의 무심함은 특히 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영어권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많은 한국 친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4.

      그런 사연으로 영어권 국가 사람과 친구 맺기를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면? 우리가 그러고 있을 줄 알았다는 듯 친절하게도 비영어권 국가들의 친구들이 보내 놓은 친구 신청이 보일 것이다. ‘그래, 지구상에는 200여 개나 되는 매력적인 나라들이 많지’ 하며 반갑게 답장을 보낸다. 한류가 유행이라고 하니 BTS, K팝, 봉준호 이야기도 조금 곁들여서. 다행히 펜팔 친구 만들기는 성공이다.

     

      운이 좋거나 능력이 좋아서 영어권 외국인과 친구가 되거나, 아니면 비영어권의 영잘알 친구와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혹은 당신이 잘하는 외국어 화자나 한국어 구사 외국인과 대화하거나). 우리와 친구가 된 사람은 펜팔을 하겠다는 열망이 영어 능력보다 큰 친구일 것이다. 애초에, 우리 자신도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니까.

     

      5.

      우리는 한국어 원어민으로서, 외국인의 서툰 한국어도 곧잘 이해하곤 한다. 영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영어가 조금 부족해 개떡같이 말할 수밖에 없더라도 영어 원어민은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리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과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권에서 한국으로 온, 한국어가 서툰 두 외국인이 대화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영어 능력이 부족한 사람 둘이서 서로 대화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떠듬떠듬 사전도 찾아가면서 동병상련하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곧 그게 없어지고 만다. 뭐가? 재미가. 재미가 없어지고 만다.

     

      모르는 단어가 문제 될 때는 요즘 잘 만들어져있는 인터넷 사전을 어찌어찌 찾아서 해결한다고 해도, 다양한 대화를 구성하기에는 아는 문법이 적어서 단조로운 문장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상대방도 마찬가지여서 흡사 유치원생 수준 이하의 대화를 지속하게 된다(솔직히, 외국어로 원어민 유치원생 수준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장한 일이다. 그때 아이들이 얼마나 말 잘하는데.). 날씨가 좋더라, 비가 왔더라, 영화를 봤는데 재밌었더라, 음식이 맛있더라. 한국말로도 대화를 이끌어나가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외국어로 하려니 더 어렵고. 상대방이 리드해주지도 못하니, 대화를 계속하기가 어려워진다.

     

      6.

      상대방이 모국어화자 native speaker이거나 영어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통념과는 다르게, 모국어 화자는 그 언어의 전문가가 아니다. 우리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어 문법을 잘 모르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에 대해 생각해 본 일도 많지 않다. 어떤 문장이 이해하기 쉬운 문장인지, 어떤 문장이 중의적이지 않은지, 어떤 단어가 쉬운 단어인지 구별하기도 어렵다.

     

      상대방이 영어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것까지 신경 써서 말해주길 바라기는 힘들다. 그래서 듣도 보도 못한 문법과 축약, 줄임말, 생각지도 못한 뉘앙스의 차이, 브로큰 잉글리시 broken english 와 외래어의 사용으로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그가 좋아한다던 Korean novel은 소설이 아니라 Telenovela(TV 드라마)였고, 여름에 쓴다던 Ventilator는 의료용 산소호흡기가 아니라 선풍기였다.

     

      펜팔 사이트에는 언어의 장벽을 넘게 해주겠다고 언어 교환 language exchange이니 뭐니 하는 코너가 많지만.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해봐야 안다. 외국인에게 우리말 가르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일방 교육도 힘든데 쌍방 교육이라. 답답함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7.

      운 좋게 언어의 장벽이 없다고 하더라도, 앞서 말했듯 대화를 하려면 화술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친구들이랑 수다 잘 떠는데? 그건 친구들이랑 있어서 가능한 거고, 공통점도, 공감대도, 서로 아는 것도 없는 사이라면 더더욱 화술이 필요하다. 아무 접점도 없는 사람과 처음 만난다면, 한국인끼리라도 대화는 어렵다. 질문을 계속 생각해내야 하고, 대화거리를 찾아야 하고, 평상시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에 대해 단답형이 아닌 대답을 해야 한다.

     

      그래서 펜팔을 하다 보면 느끼게 된다. 내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지를. 펜팔은 서로에 관한 관심보다는 서로의 국가와 문화에 관한 관심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물어보기도, 대답하기도 어렵다. 마치 내가 한국 대표가 되어 외국인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도 들고.

     

      8.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면서는 이 모든 허들을 실시간 채팅에서 넘어야 한다. 그 즉시, 바로바로! 이쯤 되면, 시차 정도는 문제도 아니다. 차라리 시차는 대화를 중단할 수 있는 요긴한 도구로 삼을 수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영어로 펜팔 하기는 어렵다. 아쉬운 사람이 영어 공부하고 대화 연습해야지 뭐.

     

      9.

      그러다가 만나게 된 앱이 슬로울리 slowly다. 이 앱을 알고 나서부터는 나는 이 앱만을 사용하고 있다. 앞서 나열한 펜팔의 난점을, 이 앱은 훌륭한 넛지 전략으로 극복했다.

     

      슬로울리의 가장 큰 특징은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전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 영상통화도 하는 시대에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슬로울리에서는 실시간으로 대화하지 않는다. 슬로울리의 메시지는 일종의 편지 같은 컨셉으로, 상대방과 나의 거리에 따라 메시지 전달에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결정된다. 가까운 나라에 사는 사람에게는 몇 시간 정도 걸리고, 지구 반대편에 보내려면 꼬박 하루가 걸리기도 한다.

     

      10.

      상상해보자. 우리가 카톡으로 대화할 때, 내가 보낸 메시지가 상대방에게 도착하기까지 열 시간이 걸리고, 그걸 본 상대방이 즉답하더라도 그게 내게 도착하기까지 열 시간이 걸린다고 상상해보자. 지금 카톡 하듯이 "ㄹㅇㄱ?", "ㄱ" 같은 대화가 가능할까? 이런 짧은 메시지는 시간 낭비이며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도입한 슬로울리의 훌륭한 넛지 전략은 여기서 나온다.

     

      슬로울리 앱의 이용자 대부분은 메시지를 편지처럼 길게 쓰고, 거기에 충실한 내용을 담아 보낸다. 짧은 메시지만 주고받으려면 한 달을 대화 해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렇다. 여기서도 어느 큰 나라 사람들은 오고 가는데 이틀이 걸리는 채팅을 시도하더라.)

     

      11.

      채팅이 아니라 편지라서, 편지를 쓰거나 읽을 때 모르는 문법이 나오거나 모르는 단어가 있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전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해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번역기라도 돌려볼 수가 있다.

     

      상대방이 내가 생각해본 적이 없거나 모르는 주제에 관해 물어도 문제가 없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알아보고 써도 된다. 심지어는 내게 할 말이 없을 때도 이 같은 특징이 도움이 된다. 편지에 즉각 답장하지 않고 며칠 있다가 할 말이 생겼을 때 답장을 해도 되기 때문이다.

     

      12.

      이름처럼, 슬로울리는 늦는 게 당연한 문화를 만들었다. 실시간 채팅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가 당연히 편지를 즉각 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즉각 읽어도 답장을 작성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고, 상대가 바로 답장을 해도 어차피 기다리는 시간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건 편지이기 때문에.

     

      바로 그 특징 하나가 펜팔의 부담을 대폭 낮추게 했다. 다른 서비스에서처럼 갑자기 친구 신청이 쏟아져 정신없어할 필요도 없다. 차근차근 읽어보고 차근차근 답장해도 된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사이, 슬로울리에서 제공하는 무료 우표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재미 요소다.

     

      그 밖에, 슬로울리에는 프로필 사진, 이른바 프사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 될 수 있다. 모든 사용자는 슬로울리가 제공하는 툴을 이용해 일종의 아바타를 만들 수 있고 그것만을 사용해야 한다. 인터넷 세상에 내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음성 파일이나 이미지 파일을 보내려면 시스템적으로 사전에 상대방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는 점도, 이상한 사람을 만나지 않게 하는 클린 펜팔을 만든다.

     

      이 글 내용의 많은 부분은, 나의 슬로울리 친구도 공감한 내용이다. 펜팔이 하고 싶지만, 어렵다면, 슬로울리를 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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